젊은 시절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세상의 상식이나 관습, 그리고 형식적인 것들에 비판적입니다. 모든 것이 '구태의연'해 보이고, 고인 물같이 보이고, 허례허식적인 쓸데없는 형식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잣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들은 날카롭게 비판하고, "용납할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자기 안의 모순은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사정 없이 세상에 비판을 가합니다.
대학 시절 나 역시 그랬습니다.
"설날이니 명절이니 하는 건 시시해. 입학식 같은 것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아. 설날? 그런 건 아무 쓸모도 없는 거야. 지구는 우리 인생과는 상관없이 돌고 있고,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도 모르잖아. 특별한 날이라도 되듯이 유난을 떨 필요가 있을까? 하루가 지나간다는 점에서는 보통 때와 별다른 점도 없는데 그런 습관에서 의미를 발견하겠다니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어."
이 생각을 좀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번호가 전부 같은 숫자로 나열된 표를 모으는 사람이 있습니다. 9999라던가 1111 따위를 모아 "어때, 희안하지"하고 자랑합니다. 우리 학교 직원 가운데도 7이 네 개인 자동차 번호판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무턱대고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만 멈춰 서서 생각해 봅시다. 0001, 0002, 0003, 0004, 0005...모두가 하나밖에 없는 번호 아닌가요? 즉9999가 희귀하듯이 모두가 두 개가 있을 수 없는 진귀한 번호들입니다. 기호로서의 가치는 모두 똑같다는 의미지요.
나는 이런 생각으로 연말이나 설날을 '특별하게' 지낼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각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살다 보면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특히 고집 센 사람이나 절제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결합니다. 대단한 것처럼 말하던 자신이 실은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임을 깨닫고 새해의 고마움을 실감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는 사람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합니다. 설날 같은 '여느날과 다른' 날이 있어서 그날을 계기로 재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설날이 없었다면 평생 기분을 새롭게 할 기회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행사나 의식은 시시해도 좋은 것입니다. 그 나름대로 생활의 리듬을 주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장례식을 보십시오. 장례식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한 의식입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세상을 떠난 사람과 결별하고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기 위한 의식인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