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5일 목요일

이충무공 후사없이 숨진 종손… 종부, 배다른 동생의 아들 호적에 올리자 종친회와 갈등

충남 아산시 현충사 경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택 터 등이 경매로 나온 가운데 이순신 장군의 유물이 암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문화재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지난 7일 찾은 현충사는 그대로였다. 이 충무공의 영정은 여전히 늠름했고 단체 견학을 나온 아이들은 조잘거렸다. 외국인 관광객은 충의문(忠義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장군의 고택 터는 대전지청 천안지원 경매에서 유찰됐다. 난중일기를 비롯한 유물 수십여점은 시장에서 흥정 대상이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군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이순신 가문

사단은 2002년부터 났다. 충무공의 15대 종손 이재국씨가 65세로 숨진 뒤부터다. 종손 부부 슬하에 피붙이는 없었다. 종친회에서는 "이씨가 숙환(宿患)을 앓다 연세대 법대 3학년을 수료한 뒤 요양 차 전국을 떠돌았다"고 했다.

이씨는 종부(宗婦·53)와 전라도의 한 절에서 만나 1986년 결혼했다. 이씨의 나이 49세였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것에 대해 종친회는 "종손의 잦은 입원 치료와 약물 복용 때문"이라고 했다. 후사(後嗣) 없이 숨진 종손의 뒤를 이어 15대 종부가 전면에 나섰다.

종친회에서는 "이 때부터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친회와 종부 간에 갈등이 시작됐다"고 했다. 종친회장 이재왕씨는 당시 이씨의 7촌 조카(당시 29세)를 양자로 내세워 대(代)를 이으려 했다. 종부는 그 대신 양자의 재산포기 각서를 요구했다.

이 문제는 소송까지 갔다. 법원은 이씨가 죽은 뒤 들인 양자는 무효라며 종부의 손을 들어줬다. 종친회의 공식입장에 따르면 현재 이순신 가문의 종손은 없다.

종부는 2004년 종손의 배다른 동생(2008년 사망·당시 38세)의 아들(5)이 태어나자 자기 호적에 양자로 올렸다.

종부는 16대 종손이라고 주장했지만 종친회는 서자(庶子)의 아들을 종손으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역대 4명의 양자가 충무공 대를 이은 적은 있지만 모두 적통(嫡統)이었다"며 "서자는 안 된다"고 했다. 현재 종친회와 종부는 서로 연을 끊었다.

종갓집 며느리로 산다는 것

종부의 동서(39)는 "일생을 유명 가문의 며느리로 사는 게 간단하겠느냐"고 했다. 자식도, 남편도 없이 종부로 사는 팔자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송대성 현충사 서무과장은 "남편이 그렇다 보니 결혼한 뒤 낙이 없었을 것"이라며 "남편이 죽은 뒤 사업하는 재미로 살아갔던 것 아니냐"고 했다.

종부는 현재 현충사 앞에서 상점을 하며 한때 웨딩홀, 옷 가게, 화장품 가게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천안에서 부동산개발 사업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은 주로 한 남성(61)과 함께 했다.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는 사이라고 했다. 종부는 이 남성에게 '이순신 장군 유물 등의 관리 운영과 관련 사업의 기획 등 모든 법적 행위 및 사항에 대해 위임을 한다'는 위임장을 써주기도 했다. 이 남성은 위임장을 들고 50대 중반의 여성 금융업자를 찾아갔다.

이 남성은 기자에게 "종친회에서 종가를 죽이려 한다. 지금까지 1만여평(시가 30억원) 정도의 전답(田畓)을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여성 금융업자는 "이 남성이 내게 충무공 관련 유물 130여점을 180억에 사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기념사업회를 한다고 해서 유물 사진을 보여준 것일 뿐"이라며 "유물을 파는 것이 가당키나 하느냐"고 했다.

종부는 그 동안 선조가 충무공에게 하사한 교지(敎旨)나 그림 등 충무공 관련 유물 80여점을 개인적으로 보관해왔다. 이 유물들은 법적으로 15대 종부의 소유다. 문화재청은 "신고가 된다면 이론적으로 매매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종친회나 현충사 관리소 모두 종부가 어디에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종친회 측은 7일 종부가 관리하는 유물의 소재를 파악해달라는 진정서를 천안지청에 냈다. 종부측은 "유물 소재지가 알려지면 도난 우려가 있다"고 했다.

종부와 이 남성은 올 2월 검찰에 고소됐다. 고소인은 호서대의 이병선 관리사업단장이다. 이씨는 "2002년부터 최근까지 둘에게 사업 자금 형식으로 빌려준 돈만 22억원가량 된다"며 "자금이 물려 있어 금방 갚는다는 식으로 계속 말을 바꿔 고소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종부와 친분이 있는 남성은 "기념 사업회를 위한 자금 마련 목적으로 여러 사업을 한 건 사실이다. 그 동안 빌렸던 사업자금 18억여원은 모두 갚은 상태"라며 "진실은 검찰 조사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5일 경매로 나온 충무공 고택 터 역시 종부가 태안에 사는 한 남성(70)에게 진 빚 7억원 때문이었다.

진실공방

종친회 측은 지난달 27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종부를 문중에서 퇴출시키기로 했다. 가문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다. 종친회 측은 "2002년 15대 종손이 죽은 후 종부가 판 땅만 수십억원은 될 것"이라며 "그 돈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종부와 이 남성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9일에는 호서대 아산 캠퍼스 앞에서 자신들을 검찰에 고소한 이병선 단장을 규탄하는 집회 시위를 벌였다.

아산 경찰서 맹정렬 정보관은 "양쪽의 말이 워낙 달라 시비를 가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종부는 경찰에서 "충무공 가문의 엄청난 재산을 40여개 종친회 파가 다 나눠먹은 뒤 나한테 돌아온 것은 별로 없다"며 "혼자 살다 보니 이리 됐다. 나도 먹고살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충사 관리소 측에 따르면 종부는 2006년에도 "경내에 있는 땅을 다른 토지로 바꿔줄 수 없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송대성 서무과장은 "사업을 하다 돈이 아쉬웠는지 자기 소유의 땅을 팔려고 온 것 같았는데 경내에 있는 토지 가격이 너무 싸 다른 땅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문의해온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오는 28일이 464회 충무공 탄신일"이라며 "5월 4일 충무공 고택 터 등에 대한 2차 경매일 이전에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8일 현재 종친회 측은 어떻게든 경매 물건을 회수하겠다며 모금을 하고 있지만 2차 경매 평가액 10억여원에 턱없이 모자라는 1억여원가량을 모은 상태다.

종부는 9일 오전 문화재청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충무공 탄신일 이전까지 어떻게든 빚을 갚아 경매만큼은 중지시키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부는 끝까지 본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